“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경고를 다시 새겨야 할 때

115년 전인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본에 국권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역사에 ‘경술국치(庚戌國恥)’로 기록된 이 날, 제천문화원은 조기를 게양하며 나라 잃은 통한의 순간을 되새기고 다시는 이런 치욕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표했다.
경술국치일은 1910년, 대한제국 내각 총리대신이었던 매국노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통감이 고종황제의 반대를 묵살한 채,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불법적인 한일병탄조약을 체결하고 이를 공포함으로써 우리나라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한 날이다. 이 날은 우리 민족이 겪은 가장 수치스럽고 비통한 순간이자,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비극이다. 광복의 기쁨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만, 정작 나라를 잃었던 이 국가적 치욕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의당(毅堂) 박세화, 선비 정신으로 순국하다
제천에는 이 통한의 날과 깊은 인연을 지닌 인물이 있다. 바로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글 읽은 선비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23일간의 절식 끝에 순국한 한말의 대학자이자 선비 정신의 표상, 의당(毅堂) 박세화(1834~1910) 선생이다.
박세화 선생은 월악산 용하동에 ‘용하영당(用夏影堂, 후칭 병산영당)’을 세우고 20여 년간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춘추대의(春秋大義)’ 정신으로 월악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8개월간 일제 한성사령부로 끌려가 혹독한 고초를 겪기도 했다.
경술국치에 항거하며 단식하던 6일째, 선생은 제자들에게 ‘예의조선(禮義朝鮮)’ 네 글자를 써 주며 의당학파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고, 마지막 순간 아래와 같은 절명시를 남기며 선비의 기개를 지켰다.
절명시(絶命詩)
道亡吾奈何 (도망오내하) – 도가 망했는데 내 어찌해야 하는가
仰天一慟哭 (앙천일통곡) – 하늘을 우러러 한바탕 크게 통곡하노라
自靖獻聖賢 (자정헌성현) – 몸과 뜻을 가다듬어 성현께 바치니
嗚呼君莫惑 (오호군막혹) – 오호라, 그대여 미혹되지 말지어다
(역해: 안광영, 병산영당 전 도유사)
박세화 선생의 순국은 ‘나라를 지키기에 앞서 자신을 먼저 단속하고, 예(禮)와 의(義)를 지키는 것이 곧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는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보여준 실천이었다.
조기 게양,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
윤종섭 제천문화원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는 경고처럼, 경술국치의 치욕과 박세화 선생의 고결한 뜻을 되새기며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오늘 제천문화원이 조기를 내건 것은 나라를 잃은 수치스러운 그 날을 엄숙히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상징”이라며 “경술국치일 조기 게양이 각 가정과 기관에 생활화되어 광복절 못지않게 이 날을 기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올해 광복 8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원랑선사탑비’ 등 제천의 문화재 환수 운동과 함께 경술국치일 조기 게양은 과거를 바로 기억하고 미래를 지키는 뜻깊은 행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술국치는 과거에 묻힌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나라 잃은 통한의 역사를 잊지 않고, 저마다의 삶 속에서 예와 의를 지키며 살아간다면 선열들이 목숨으로 지킨 그 날의 의미는 결코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제천또바기뉴스=이호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