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윤희순 의병장의 삶, 무대 위에 되살아나다… 제천시민과 함께 만든 항일 역사극

2025년 7월 4일 금요일 저녁, 제천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감동과 울림이 깃든 창작 뮤지컬 <안사람 의병가>가 200여 명의 관객 앞에서 성황리에 막을 올렸다.
이번 공연은 제천문화예술학교가 주최하고, 제천시와 제천문화재단이 후원한 ‘2025 지역문화단체육성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정통 창작 뮤지컬이다.
<안사람 의병가>는 조선 말기 항일 여성 의병장 윤희순(1860~1935)의 삶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제천 지역에서 전개된 항일운동과, 오랫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었던 여성 의병들의 활약을 무대 위에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과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본격화된 제천 의병 항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작품은 불타버린 제천의 참혹한 모습과 함께 치마를 걷고 총을 들었던 여성들의 뜨거운 투쟁을 힘 있게 그려냈다.
“여자라 하여 어찌 나라를 지키지 못하랴”
극 중 윤희순 역을 맡은 배우 윤성경은 “나라를 구하는 데 남녀가 따로 있지 않다”는 절절한 대사와 함께, 붓과 책 대신 총과 깃발을 든 여성 의병장의 고뇌와 결단을 깊이 있는 연기로 표현했다. 특히 대표곡 <안사람 의병가>가 흐를 때 관객들은 박수로 장단을 맞추며 무대와 하나 되었고,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장면에서는 객석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항일 함성으로 물들었다.



실존 인물인 윤희순의 삶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 작품은 그녀가 시아버지 류홍석 의병장을 따라 제천 호좌의진에 합류하려 했지만 거절당하면서 시작된다.
“나라 없는 집안살림은 무의미하다”며 스스로 여성 의병대를 창설한 윤희순은 여성들과 함께 군자금을 모으고 화약과 탄약을 직접 제작해 보급했으며, 부상병을 치료하고 의병가를 창작해 전투에 나서는 이들의 사기를 북돋는 데 헌신했다.
마지막 제천 전투에서 동지들의 희생을 지켜본 윤희순은 “반드시 나라를 되찾겠다”는 결의를 품고 만주로 향했고, 뮤지컬은 이러한 그녀의 여정을 탄탄한 서사와 음악, 안무로 풀어내며 관객들의 마음을 뜨겁게 적셨다.
지역 예술인의 힘으로 만든 역사극
이번 공연은 전문 배우와 지역 예술인이 함께 만든 협업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깊었다.
윤성경(윤희순 역), 주찬(류홍석 역), 백마리(제천댁 역) 등 전문 배우들이 극의 중심을 이끌고, 제천 시민 배우들이 함께 호흡을 맞췄다.
출연자들은 연습 초기에는 주 2회, 이후 주 4회로 횟수를 늘려가며 맹연습을 이어갔고, 공연 막바지에는 시민회관 소극장을 빌려 매일같이 구슬땀을 흘리며 무대를 완성했다. 대사 하나하나에 혼신을 다하고, 손짓 하나에도 디테일을 살려낸 이들의 노력은 무대 위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번 공연에는 총 16명의 출연 배우와 10명의 스태프가 참여했으며, 이 중 13명이 제천 시민으로 구성되어 지역 공동체의 손으로 완성한 작품이라는 상징성을 더했다.
연습 현장에는 연극을 사랑하는 주부, 농부,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시민들이 함께했고, 연령대도 60대에서 80대까지 다양했다. 출연자 16명 중 단 3명만이 전문 배우였고, 나머지는 모두 아마추어였지만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최정애(월래 역), 류호동(춘삼 역), 김종숙(안승우 역), 정미용, 이신자, 황경재, 이영희(안사람 의병 역), 이명희(홍사구 역), 변상희, 엄미경(마을사람 역), 박소을, 김청자(의병 역), 장은(일본 장교 역) 등 시민 배우들의 열연은 작품의 감동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그냥 만들었습니다”
정옥용 제천문화예술학교 대표는 “30여 년간 뮤지컬을 제작해 왔지만 이번처럼 힘든 작업은 처음이었다”며 “제천의 역사를 제천 사람들이 무대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일이기에, 예산 이외에도 많은 자비를 들여서라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지역 문화예술의 힘은 결국 우리 스스로의 이야기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연출을 맡은 이창섭 감독은 “이 작품은 거창한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조용히 싸우고 묵묵히 버텨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역사 속 중심이 아니었던 안사람들이 지켜낸 하루하루를 기억해주길 바란다”며 뮤지컬의 진정한 메시지를 전했다.
“제천 시민으로서 자부심… 무대 위에서 울컥울컥했죠”
월래 역을 맡은 제천시민 최정애 씨는 무대 뒤 감정을 이렇게 전했다.
“제천은 의병 도시입니다. 그 제천에서 이런 훌륭한 의병 이야기를, 그것도 우리가 무대 위에서 직접 연기한다는 건 시민으로서 정말 큰 자긍심을 갖게 하는 일이었어요. 한 사람의 삶을 껴안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고, 그 감정에 울컥울컥했습니다. 제천 사람으로서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더 제천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들었어요.”
안사람들의 치마 속 저항, 기억되어야 할 역사

공연은 윤희순과 함께 싸운 여성 의병들, 제천댁과 월래의 희생, 그리고 만주로 떠나는 결의까지 이어지며, 여성들이 조력자가 아닌 적극적인 저항의 주체였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붓으로 저항하고 총으로 맞섰던 안사람들. 그들의 작고 단단한 삶은 이날 제천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 숨 쉬었다.
공연 종료 후에는 관객을 위한 행운권 추첨이 진행되어 다양한 경품이 제공됐으며, 시민들의 열띤 참여와 호응 속에 문화와 역사의 가치를 되새기는 뜻깊은 밤이 완성됐다.
(제천또바기뉴스=이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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