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11일, 따가운 초여름 햇살이 내리쬐던 아침. 제천종합운동장 앞에 차량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고, 사람들 사이로는 조용하지만 설렘 가득한 기운이 감돌았다. ‘행복한 동행’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반듯하게 준비된 차량들이 오늘의 특별한 시작을 알렸다. 누군가에겐 오래도록 기억될 ‘따뜻한 하루’가 그렇게 시작됐다.
“어서 오세요, 어르신. 오늘 날씨 참 좋네요.”
자원봉사자는 어르신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조심스레 붙잡고 다정한 눈빛으로 인사했다. 모범운전자들도 환한 미소로 반겼다. 이 날 행사는 한국자유총연맹 제천시지회(회장 심상천)와 제천시모범운전자회(회장 최지원)가 공동 주최한 ‘보훈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동행’ 나들이였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마련된 이번 행사에는 무공수훈자회, 월남참전자회, 고엽제전우회, 상이군경회 등 4개 보훈단체에서 24명의 어르신이 참여했다. 고령의 국가유공자들이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며 일상의 쉼과 위로를 얻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출발합니다!” 느린 속도, 깊은 배려…차량 행렬이 만든 아름다운 풍경
이날을 위해 모범운전자들은 미리 차량을 정비하고 세차도 하고, 에어컨도 미리 틀어 놓는 등 세심한 출발 준비를 마쳤다. 출발을 알리는 안내가 울려 퍼지자, 모범운전자 11명의 차량이 차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두 차량이 비상등을 켜고 나아가자, 나머지 차량들도 질서 있게 뒤따르며 영월로 향했다. 시속 50km 이하의 느린 속도는 안전을 위한 배려였고, 창밖으로 펼쳐진 초여름의 풍경은 어르신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차량 행렬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모범운전자들은 무전기를 통해 수시로 소통하며 차량 간 간격과 속도를 조율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전 구간에서 세심하게 운행을 관리했다.
“이런 데를 몇십 년 만에 와보는 것 같아… 참 좋구먼.”
차 안에서 어르신이 말하자, 운전자는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체가 여정이자 힐링이었다.
역사의 숨결과 꽃향기 속에서 피어난 웃음

첫 목적지는 영월관광센터 미디어체험관. ‘꿈의 정원’을 주제로 한 미디어 아트 영상 속 민화 이야기와 창령사터 오백 나한의 이야기가 빛과 음악으로 펼쳐지며 어르신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어 민화 전시관을 함께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짧은 대화 속에서 따뜻한 정이 오갔다.
자원봉사자들은 유적지 관람 시 내내 곁을 지키며 승하차를 돕고,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보살폈다. 점심 시간에는 연잎밥과 생수를 직접 테이블로 가져다드리는 등 작은 편의도 빠뜨리지 않았다. 차량 안에서는 말벗이 되어 웃음을 나누고,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했다.

특히, 심상천 회장과 자원봉사자들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부축하며 손을 꼭 잡은 모습은, 세대를 넘어선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장면이었다. 봉사 이상의 마음을 나눈 진정한 ‘동행’이었다.

이후 단종의 유배지로 유명한 청령포로 이동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며, 어르신들은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며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는 듯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감돌아 흐르는 서강을 건너 도착한 청령포에서, 소나무 우거진 숲을 산책하며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 특히 600년의 세월을 품은 ‘관음노송’ 앞에서는 어르신들 모두가 사진을 찍으며 오늘을 기록했다.
“이런 나들이 자주 있었으면”…어르신들의 따뜻한 고백
6·25 참전 유공자인 한 어르신은 나들이를 마친 후, 이렇게 말했다.
“이 나이에 어디 나가기도 쉽지 않은데, 친구들도 만나고 바람도 쐬고… 정말 좋았어.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어.”
또 다른 어르신도 “오늘 하루 오랜만에 웃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제가 더 힐링이 됐습니다”… 봉사자들의 진심 어린 동행

행사를 기획한 한국자유총연맹 제천시지회 심상천 회장은 “여러분이 계시기에 대한민국이 있고, 제천이 있다”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보훈 가족 여러분께 문화적 위로의 시간을 드리고 싶었다. 앞으로도 보훈 문화 확산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또한 이날 차량 봉사에 참여한 제천시모범운전자회 최지원 회장은 “어르신들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더 힐링됐다”며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이라면 언제든 함께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루의 생업을 잠시 접고 따뜻한 동행에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준 모범운전자들의 헌신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주는 나눔이었다.
1976년 창립된 제천시모범운전자회는 평소에도 스쿨존 교통 캠페인, 지역 행사 교통 지원, 교통지도 활동 등을 꾸준히 펼치며 ‘도로 위의 수호천사’ 역할을 해오고 있다.
작지만 깊은 울림…‘행복한 동행’의 의미
한낮의 햇살 아래 다시 제천으로 돌아오는 길. 어르신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차량 안엔 어느새 정이 들었다. 짧은 몇 시간의 나들이였지만, 그 속엔 수십 년의 고마움과 헌신에 대한 진심 어린 보답이 담겨 있었다.
일정이 모두 끝난 뒤에도 몇몇 모범운전자와 자원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을 집 앞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린 후, 다시 각자의 업무로 조용히 복귀했다. 눈에 띄지 않는 순간까지도 이어진 이들의 배려는, ‘함께 걷는 동행’의 진짜 의미를 보여주었다.
이날의 ‘행복한 동행’. 누군가의 인생에서 오랜만에 피어난 웃음, 오래 기억될 하루. 도로 위를 조용히 달린 차량 행렬은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조용히 전하고 있었다.
(제천또바기뉴스=이호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