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착한 도시의 침묵은 끝났다” 신종찬 백년회 대표, 지역 소멸 맞선 생존 전략 제시
ㅣ국가 안보와 산업화 명분 아래 봉인된 제천의 과거, ‘보상받지 못한 헌신’ 규정하며 공론화

아름다운 청풍명월의 풍경은 제천을 상징하지만, 그 이면에는 오랫동안 봉인돼 온 상처가 있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병의 함성은 일제의 보복으로 돌아왔고, 산업화의 이름 아래 고향 땅은 물에 잠겼다. 지금도 고압 송전탑과 군사시설은 시민들의 일상 가까이에서 묵직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모든 시간은 국가를 향한 제천의 인내였지만, 그 끝에 남은 것은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라는 냉혹한 현실이다. 이 오래된 침묵의 고리를 끊겠다며 거리로 나선 인물이 있다. 1인 시위와 시민 호소문으로 지역사회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신종찬 (가칭)제천시민꿈틀운동 백년회 공동대표다.
■침묵을 깬 분노… ‘통보’로 돌아온 국가의 시선
최근 제천의 공기는 분명 달라졌다. ‘조용한 도시’라는 이미지로 각종 국가 현안을 묵묵히 감내해 왔던 시민들이 고압 송전탑 추가 설치 논란을 계기로 집단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중심에서 신 대표를 만났다.
신 대표를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이끈 것은 분노와 절박함이었다. 그는 지난 10월 봉양읍에서 열린 한전 송전탑 설명회를 결정적 순간으로 꼽았다.
“설명회라는 이름이었지만, 실상은 통보에 가까웠다. 그때 큰 분노를 느꼈다.”
처음부터 그가 앞에 나설 생각은 아니었다. 지역의 누군가, 조직이 움직여 주길 기다렸다고 그는 솔직히 말했다. 그러나 모두가 고개를 돌린 채 침묵하는 현실 앞에서 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제천의 근대사 100년을 다시 들춰보기 시작했고, 반복된 희생에도 정당한 보상이 없었다는 사실이 오늘의 위기를 만들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40년 지기 친구들과 함께 ‘백년회’를 꾸렸다.
■100년의 청구서… ‘보상 없는 헌신’을 직시하다
신 대표는 제천의 지난 세기를 ‘보상받지 못한 헌신’으로 규정한다. 의병 도시라는 이유로 초토화된 역사, 충주댐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몰의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를 탓하자는 게 아니다. 왜 제천이 늘 선택당하는 구조였는지를 직시하자는 것이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는 미래에서도 같은 희생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의 문제의식은 군사시설 논란으로 이어진다. 최근 신 대표는 미사일 기지와 탄약창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다. 민감한 사안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이유에 대해 그는 ‘시민 안전’을 분명히 했다.
“군사 기밀을 들추자는 게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위험 앞에서 시민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구조가 문제다. ‘안보’라는 단어 뒤에 숨어 모든 논의를 차단해 온 관행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그는 성주 사드 기지 사례를 언급하며, 문제 제기 이후 막대한 지원과 보상이 이뤄진 점을 짚었다. 반면 제천에는 비슷한 시기 대규모 미사일 기지가 조성됐지만, 설명도 보상도 없었다는 점을 대비시켰다. 지금도 탄약창 지하에서 공사가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며, 최소한의 안전 검증과 그에 걸맞은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존 전략… 공공기관 유치는 국가의 ‘책임’이다
신 대표가 제시하는 제천의 생존 전략은 명확하다. 공공기관 유치다. 그는 이를 지역이 얻어내는 혜택이 아니라,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이라고 말한다.
“제천은 이미 국가를 위해 충분히 많은 것을 내줬다. 송전선, 군사시설, 수몰, 환경 부담까지 떠안아왔다. 이제 국가는 제천을 희생의 공간이 아니라 회복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철도와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교통 여건, 축적된 희생의 역사 모두가 공공기관 입지로서 제천의 설득력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공공기관 유치가 일자리와 인구, 도시의 자존을 회복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12월 30일 시민 대토론회… 공감을 연대로
시민들의 반응도 달라지고 있다. 신 대표는 “처음에는 냉소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동안 몰랐다’, ‘누군가는 말해야 했다’며 손을 내미는 분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침묵이 공감으로, 공감이 연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 흐름의 분기점으로 그는 오는 12월 30일 제천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제천시민 대토론회’를 꼽는다. 주제는 ‘제천은 왜 침묵해왔는가, 또다시 침묵할 것인가’. 행정이 아닌 시민이 주체가 되는 공개 토론의 장이다.
“제천 시민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자리다. 불만을 쏟아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무엇을 요구할지 스스로 정하는 날이 될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신 대표는 다시 시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혼자 하면 뭇매를 맞고, 여럿이 하면 잔매를 맞지만, 다 같이 하면 때리던 사람이 맞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천의 생존권 문제입니다. 제천 시민의 100년 희생에 대해 국가가 100년의 보상으로 답하게 만들고, 우리의 손으로 100년의 미래를 새로 써야 합니다. 부디 이 정당한 시민 행동에 함께해 주십시오.”
침묵을 깨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제천의 궤적을 어디까지 바꿔 놓을지, 12월 30일의 선택에 지역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제천또바기뉴스=이호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