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제천학연구소 설립 학술 세미나 개최… 지역 정체성 확립·미래 동력 확보 한목소리

인구 감소와 소멸 위기라는 현실적 과제에 직면한 제천시가 ‘제천학(堤川學)’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다. 제천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인문 자산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미래 세대에 전승하기 위한 ‘제천학연구소’ 설립의 당위성을 확인하는 공론의 장이 열렸다.
제천문화원(원장 윤종섭) 주최로 24일 오후 2시 문화원 3층 강좌실에서 열린 ‘제천학연구소 설립을 위한 학술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제천학 연구가 향토사 연구 이상의 지역 정체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고 미래 경쟁력을 키우는 핵심 전략임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김창규 제천시장, 박영기 시의회 의장, 김꽃임 도의원, 이정임 시의원을 비롯해 지역학 연구자, 심상천 자유총연맹 제천시지회장과 회원, 시민 등 70여 명이 참석한 이번 세미나는 올해 제정·공포된 「제천시 제천학 연구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근거로, 연구소 설립의 실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 “지역 소멸에서 지역 소생으로”… 절박함 속의 전략적 선택
기조 발표에 나선 정삼철 CRI북부분원 명예연구위원은 제천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했다. “제천은 인구감소 소멸위험도시로 분류되어 있으며, 국가 예산 증가의 수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짚었다.
그는 해법으로 지역학 연구의 전략적 활용을 강조했다. “정부 정책 방향에 맞는 ‘제천다움’의 문화가치를 창출해 제천만의 로컬문화를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67년 역사를 지닌 제천문화원의 잠재적 역량과 자원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며 문화원의 중심 역할을 주문했다.
정 위원은 구체적 정책 과제로 △제천학연구소의 지역거점 전략 기반화 △역사문화 유산의 지역주권 자산화 △문화기반 정책논리 뒷받침 강화 △지역기억 기록화 및 로컬문화뱅킹 구축 △로컬 아키비스트(지역 기록전문가) 육성 등을 제시했다.
송은옥 한국문화원연합회 국장 역시 제천학연구소 설립의 당위성이 이미 확보되었음을 분명히 했다. “지역학은 지방분권, 균형발전 정책과 맞물린 전략적 자원”이라며, “지역학은 ‘지역 소멸’에서 ‘지역 소생(공생)’으로 가는 전략적 키워드”라고 그 중요성을 평가했다.
송 국장은 “지역학은 지역 정체성과 자율성 확보의 핵심 지식 기반”이라며 “문화진흥 정책과 맞물려 지역의 생존 전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제천시 제천학 연구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 등 법적 기반이 마련되고, 정부의 ‘지방문화원 지원·육성 기본계획’이 문화원을 지역학 거점으로 강조하는 정책적 흐름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 “중원문화권 아닌 ‘내토문화'”… 30년 숙원 ‘정체성’ 확립
‘제천학 연구’가 시급한 또 다른 이유는 제천 고유의 정체성을 학문적으로 명확히 정립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종합토론에서 한인섭 중부매일 대표는 1996년 의림문화제 토론회 경험을 회고했다. “당시 충주를 중심으로 한 ‘중원문화권’에 제천을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제천은 고구려 문화권에 가깝고 독자적인 ‘내토문화권’ 정체성이 있지만, 33년간 이에 대한 연구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제천의 위상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철도산업, 시멘트산업, 유통 중심지 역할에서 많이 퇴보했다”며 “지역학 연구소 설립을 통해 역사, 문화, 미래상, 지역민의 일체감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제천학연구소가 이러한 논의를 매듭짓고, 의병의 고장이자 학문과 충절의 도시로서 제천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 67년 제천문화원의 역량, ‘컨트롤 타워’로 거듭나야
연구소 설립의 구심점은 67년의 역사를 지닌 제천문화원이 되어야 한다는 점도 명확해졌다.
정삼철 위원은 “전국 232개 문화원 중 65%가 지역학 연구소를 운영 중”이라며 “제천문화원이 가진 잠재적 역량과 자원을 활용해 부설 연구소를 통해 지역문화 주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제천문화원이 지역기억을 보존하고 미래문화의 거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광호 충주문화원 사무국장도 「지방문화원진흥법」에 명시된 문화원의 고유 사업이 바로 지역문화 연구임을 상기시켰다. “충주학연구소는 지자체의 적극적 지원을 기반으로 설립돼 지역 정체성 확립과 시민 자긍심 고취에 기여하고 있다”며 “제천도 시와 의회의 협력 아래 연구소를 조속히 개소해 제천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연구소가 문화재단 등 지역 내 타 문화기관과의 협업을 이끄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상수 제천문화재단 이사장은 “문화재단은 공모사업으로 본예산의 50%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며 “문화원, 문화재단, 연구소가 공동 프로젝트로 공모사업에 참여한다면 빈약한 지자체 예산을 극복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은옥 국장은 익산과 강릉의 사례를 들며 “처음 기획 단계부터 문화원과 문화재단이 역할을 명확히 하고, 중복을 피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미래를 위한 ‘생산적 저장고’… 기록하고 인재 키운다
궁극적으로 제천학연구소는 과거를 집대성하는 것을 넘어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적 저장고’가 되어야 한다는 비전이 제시됐다.
송은옥 국장은 “춘천문화원의 사례처럼 전 세계가 알 수 있는 디지털 기록관을 만들고, 독보적으로 잘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디지털 기록관을 구축해 전 세계가 접근할 수 있는 지역학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역학 연구의 성과를 디지털화해 접근성을 높이고 보존성을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이는 정삼철 위원이 제안한 ‘지역기억 기록화 및 로컬문화뱅킹 구축’, ‘로컬 아키비스트 육성’과도 맥을 같이한다. 정 위원은 “제천 단위에서 접근 가능한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와 시민 접근형 교재 개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청풍지(淸風紙) 같은 제천의 전통 산업 유산도 학문적으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노광호 국장은 “지역학은 인문학, 사회학, 나아가 공학적 요소까지 포함하는 복합 학문”이라며 “학예연구사들이 기획자 역할을 담당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천학연구소가 설립되면 역사문화, 문화예술, 문화산업, 문화경제, 문화정치 등 제천만의 특화된 문화자원을 발전시킬 토대가 될 것”이라며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하루빨리 개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독립성과 재정 확보 방안도 논의
강신욱 전 증평학연구소장은 연구소 설립의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하며 실질적 대안을 제시했다. “충북 내에서도 충주, 증평 외에는 설립이 쉽지 않다. 재정적 독립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며 공익사업기부제 활용을 제안했다.
그는 “작년부터 시행된 지정기부 방식을 활용하면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다”며 “기업 후원을 적극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은옥 국장도 “문화원의 운영은 지역의 문화 정체성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기업 후원 등 민간협력 모델도 병행돼야 지속 가능한 지역학 연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인섭 대표는 “지역 대학들이 제천의 의림지, 중앙시장을 연구해야 하는데 전국적 이슈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각 학문 분야별로 제천에 시선을 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정삼철 위원은 “광역과 기초지자체 연구소는 기능적 차별성을 두고 협력해야 한다”며 “충북학·충주학연구소와의 차별화된 역할 설정과 지역대학의 참여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 “문화는 지역의 뿌리이자 몸체”… 윤종섭 원장의 간곡한 호소
윤종섭 제천문화원장은 개회사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제천학연구소 설립의 절박함을 거듭 강조했다.
윤 원장은 “제천학연구소는 제천의 역사와 문화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해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핵심 거점이 될 것”이라며 “이번 논의를 통해 제천이 지역학 연구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1997년 세명대학교에 제천학연구소를 시작했지만 지역 마인드 문제로 지속되지 못했다”며 과거의 실패를 상기시켰다. “문화는 뿌리이자 몸체이고 지역을 일구는 기본인데, 안 보이기 때문에 홀대받는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윤 원장은 특히 “도로는 아낌없이 만들면서 왜 문화사업은 그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문화원이 67년 역사를 갖고 있고, 법적 근거도 마련됐으니 이제는 과감하게 지원해줄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방자치 시대에 뿌리 없이 무엇을 하겠는가. 지역학 연구소 없이 지방자치 시대 생존은 불가능하다”며 “연구소는 지역의 인재를 키우고, 지역의 자원을 생산적인 자원으로 발굴해 시에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원장은 “문화로 풍성한 지역이 되고, 제천다움을 발굴해 제천문화원이 이 지역 중심 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천학연구소가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번 세미나 논의를 바탕으로 제천학연구소가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이제는 실행이다… 33년 전 논의, 이제는 성과로
이날 세미나는 제천학연구소 설립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공감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정부의 지역학 연구 강화 정책, 전국 문화원의 65% 연구소 운영, 충주·증평 등 인근 지역의 성공 사례는 제천이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천문화원은 이번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타 지역 연구소의 운영 사례를 분석하고, 제천 실정에 맞는 설립 및 운영 모델을 마련한 뒤 구체적인 정책제안서를 제천시에 제출할 계획이다.
제천문화원 관계자는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제천학연구소 설립이 학술 논의에 그치지 않고, 제천의 미래를 여는 실질적 거점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천시와 시의회의 적극적인 예산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뒤따른다면, 제천학연구소는 지역 정체성 확립과 미래 경쟁력 확보의 든든한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33년 전 제기됐던 제천의 문화적 독자성 논의가 이제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제천시와 시의회, 그리고 지역사회의 결단이 주목된다.
(제천또바기뉴스=이호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