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제천의 거리를 뜨겁게 달궜던 축제의 함성이 역사의 기억을 소환하며 시민을 하나로 묶었다면, 이번 전시는 차분한 묵향(墨香) 속에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녕을 묻는 따뜻한 위로의 장이었다.
(사)충북민예총 제천단양지부(지부장 박기정)는 지난 10월 25일부터 29일까지 닷새간 제천시민회관 제2전시실에서 제22회 민속예술제의 두 번째 이야기인 기획 전시를 개최한다.
‘대한시민의 무탈을 기원하며’라는 대주제 아래 열린 이번 전시는 거리 행사의 역동성을 내면의 성찰과 기원으로 승화시키며 예술제의 깊이를 더했다.
전시장에는 민화 7점, 공예 2점, 사진 1점 등 총 10점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했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한 ‘안녕’과 ‘희망’을 화폭과 조형물에 담아내며, 재난과 시련 없는 평온한 일상을 소망했다.
■거리의 ‘기억’을 전시로 소환하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의 눈길을 끈 것은 전시장 중앙에 걸린 대형 천이었다. 이 천은 지난 10월 25일 제천문화의거리에서 진행된 민속예술제 거리 행사에서 ‘손의 기억, 평화의 약속’ 체험을 통해 탄생한 결과물이다.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과 유언이 적힌 거대한 천 위에는 당시 축제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소망이 빼곡히 담겼다. ‘가족 건강’, ‘부자되기’, ‘대한민국 화이팅!’, ‘모두 행복하세요’ 등 시민들이 먹물로 찍은 손도장 옆에 적은 저마다의 간절한 소원은, 거리 행사의 역동적인 ‘기억’을 전시장으로 소환하며 시민들과 호흡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 액운을 막고 복을 부르다… 민화(民畵)에 담긴 간절한 소망
전시의 주축을 이룬 민화 작품들은 예로부터 내려온 길상(吉祥)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눈길을 끌었다.
차혜숙 작가의 <운룡도(雲龍圖)>
한진희 작가의 <일상의 행복>
차혜숙 작가의 <운룡도(雲龍圖)>는 구름 속을 노니는 용의 형상을 통해 강렬한 기운을 뿜어냈다. 물과 비를 다스려 화재를 막는 수호신인 용을 통해 관람객의 액운을 막고 만사형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한진희 작가의 <일상의 행복>은 친근한 닭과 병아리를 소재로, 악귀를 쫓고 다산을 기원하며 평온한 일상의 회복을 노래했다.
박기정 지부장의 <널 그리며>
김숙자 작가의 <연화도>
박숙희 작가의 <연화도>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낸 세 점의 연화도(蓮花圖)가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박기정 지부장의 <널 그리며>는 황금빛 배경과 노란 연꽃의 대비를 통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시련 속에서도 잃지 않는 고고한 정신과 그리움의 정서를 표현했다. 이어 김숙자 작가의 <연화도>는 싱그러운 잎 사이로 피어난 흰색과 연분홍 연꽃으로 가족의 화목과 번영을 기원했으며, 박숙희 작가의 <연화도>는 연꽃과 원앙을 함께 배치해 부부의 금실과 가정의 행복이라는 명확한 길상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유경옥 작가는 <백화도>
황정임 작가의 <신윤복의 저잣길>
전통 소재를 다루면서도 독창적인 시각을 더한 작품들도 돋보였다. 유경옥 작가는 <백화도>로 십장생과 군학도의 요소를 결합한 채색화로 만수무강을 기원했고, 황정임 작가는 <신윤복의 저잣길>을 통해 서민들의 일상을 재현하며 지역 경제의 활성화와 활기찬 삶으로의 복귀를 염원했다.
■ 의림지, 글씨가 되어 숨 쉬다… 현대적 감각으로 빚은 전통
현대적인 감각으로 제천의 정체성을 풀어낸 시도 또한 주목받았다.
김덕래 작가의 <의림지>
김덕래 작가의 <의림지>는 물고기 비늘을 ‘의림지’라는 글자로 촘촘히 채워 텍스트와 이미지의 결합을 선보였다. 제천의 상징인 의림지(義林池)를 소재로 한 김덕래 작가의 공예 작품 <의림지>는 제천의 역사와 생명력을 시각적으로 엮어내는 독창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김 작가는 스티로폼을 주재료로, 작품 전체를 의림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물고기 형상으로 조형화했다. 이 물고기는 제천의 고유한 정체성을 끌어안고 있는 상징물이다. 특히 이 작품의 섬세한 특징은 물고기의 디테일에서 드러난다. 작가가 직접 밝힌 것처럼, 물고기 몸체를 이루는 촘촘한 비늘 하나하나가 바로 ‘의림지’라는 글자 모양이다. 이는 생명의 근원인 물과 그 터전인 의림지, 그리고 그 안의 생명체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작품을 감싸는 푸른색은 의림지의 맑은 물과 드넓은 하늘을 동시에 담아냈다. 작가는 “물고기는 의림지를 품고, 의림지는 물고기의 비늘이 되어 서로를 완성하는 생명의 순환과 조화를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조미행 작가의 <무병장수>
조미행 작가의 <무병장수>는 전통적 기원인 ‘수복수복(壽福壽福)’을 현대적인 미니멀리즘으로 해석했다. 톱니바퀴와 자연을 상징하는 꽃의 조화는,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도 자연의 이치와 균형을 맞출 때 진정한 건강과 안녕을 얻을 수 있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던졌다.
전영표 작가의 사진 <번져나가다>
전영표 작가의 사진 <번져나가다>는 의림지 노송의 반영을 포착했다. 물 위에 비친 나무의 궤적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이 고립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확장되고 주변과 연결되어 있음을 묵직하게 보여주었다.
■ “우리는 서로에게 빛”… 예술로 건네는 응원
박기정 충북민예총 제천단양지부장은 전시를 마무리하며 “밤하늘을 수놓는 별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소중한 존재”라며 “삶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때로는 휘청거릴지라도, 예술이 서로에게 빛이 되고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박 지부장은 “오늘 이 자리가 지난 아픈 기억을 보듬고, 제천 시민 모두의 하루하루가 평온하고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진정한 치유의 시간이 되었기를 희망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제천또바기뉴스=이호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