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사별한 아내 향한 8번 째 헌정 사진집, 시와 사유가 결합한 치유의 미학
ㅣ추위 뚫고 핀 연꽃부터 제천의 비경까지 인문학적 시선으로 담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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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경이로운 순간을 렌즈에 담아온 사진탐미가 몽운(夢雲) 윤종섭 제천문화원장이 여덟 번째 사진인문학 저서인 ‘아무튼, 기운생동’을 세상에 내놓으며 지역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1975년부터 50년 가까이 삼라만상의 섭리를 좇아온 작가의 치열한 예술혼과 사별한 아내를 향한 짙은 그리움이 빛과 사물의 조화 속에서 찬란하게 피어난 결실이다. 카메라 렌즈가 포착한 찰나의 빛이 철학적 문장과 만나 인생의 본질을 꿰뚫는 묵직한 서사로 재탄생했다.
이번 저서의 출간을 기념해 윤종섭 문화원장과 나눈 심층 일문일답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와 삶의 철학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
■ 사진 철학과 50년 외길의 소회
Q: 사진인문학 제8집 출판과 ‘아무튼 기운생동’ 사진전을 개최하신 소회가 어떠신지요?
윤: 1975년부터 사진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자연의 존재 가치와 그 안에 숨겨진 기운생동한 면모를 작품 속에 녹여내려 노력해 왔다. 이번 8집은 나의 사진 스타일과 짧은 글이 결합하여 관람객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다는 점에서 50년 사진 인생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나의 뜻이 대중에게 가닿는다는 자체가 큰 소회이자 보람이다.
Q: 전시와 책의 제목인 ‘아무튼 기운생동’에 담긴 특별한 의미와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윤: 자연을 접하다 보면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기운과 의미가 무궁무진하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사진 예술을 통해 자연의 생동하는 기운을 공유하고 싶었다. 독자들이 내 사진을 보며 늘 기운생동한 마음 자세로 살고, 작품 속 자연의 에너지를 함께 나누며 긍정적인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Q: 사진예술을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빛(明)과 어둠(無明)의 조화성을 기본 요건으로, 만상의 존재 가치를 전위적 사고로 순간을 담아내는 인문학적 메시지 작업”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이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신다면요?
윤: 예술이라는 단어를 붙이려면 기존의 틀을 깨는 전위적 사고가 필수적이다. 사진은 단순히 사각 프레임 안에 자연을 집어넣는 모방이 아니다. 빛과 어둠을 이용해 피사체를 재해석하고, 기존의 틀을 벗어난 구체화된 생각으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다. 평범한 기록을 넘어 빛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전위적인 자세가 있어야 진정한 사진 예술이라 할 수 있다.
Q: 풍경 기록을 넘어 사진에 철학적 문장을 더해 인문학적 성찰을 끌어내는 작업 방식을 고집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윤: 사진에는 비인간적인 것을 인간화하는 환유적 힘이 있다. 2차원의 무생물적인 풍경에 빛을 입혀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적인 화려함이나 빛의 궤적을 좇는 것에 머물지 않고, 사진을 통해 교훈을 얻고 사유할 수 있는 인문학적 영역을 개척하고자 함이다. 사진을 보며 느끼는 다양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철학적 문장을 더하고 있다.
■ 빛의 미학과 자연의 생명력
Q: ‘해가 주는 생생한 기운’ 파트에서 독자들이 중점적으로 느꼈으면 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윤: 해 그 자체보다 해가 발산하는 빛의 역할을 눈여겨봐 주길 바란다. 빛의 방향성, 흐름, 농도를 통해 자연이 어떻게 인간화되는지 그 흔적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제천 지역의 인물성동론처럼 사람과 물건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자연의 좋은 기운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빛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Q: 해넘이를 “하루의 마지막 숨결을 토하는 것”으로, 해돋이를 “붉은 생명의 꽃”으로 표현하셨습니다. 두 순간을 마주할 때 작가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차이가 있으신지요?
윤: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해돋이는 하루가 시작되는 희망과 기다림을 담은 피어나는 꽃과 같다. 반면 해넘이는 마지막을 향해 가는 숙성된 아름다움의 극치다. 인간의 마무리는 쓸쓸할 수 있지만, 자연의 일몰은 아침 해보다 더 경이롭고 찬란하게 소멸한다. 속도는 동일하지만 지는 해가 훨씬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소멸의 강렬함 때문이다.
Q: 헤밍웨이의 명언 “빛은 이 세상을 어둠이 지배토록 결코 놔두지 않는다”를 특별히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윤: 나는 어둠을 상당히 강하게 나타내면서 그 안에서 빛의 흐름을 유추하는 작업을 한다. 빛과 어둠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며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다. 어둠 속에서 빛을 극대화할 때 사람의 감정을 회귀시키는 힘이 생긴다. 빛은 결코 어둠에 세상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긍정의 철학을 전하고 싶었다.
Q: 포항 상생의 손이나 촛대바위 등 피사체와 해를 절묘하게 배치하셨습니다. 위치 선정 과정과 의도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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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찰나의 구도를 위해 현장에서 무수하게 움직인다. 포항 상생의 손이나 촛대바위 작업 당시에도 위치 선정을 위해 5천 보 이상을 걸었다. 빛이 가진 설명력과 강렬함이 화면 어느 위치에 있을 때 가장 큰 의미를 주는지 찾기 위해 위아래로 끊임없이 이동하며 전체적인 구도를 잡고 배치한다.
Q: 해를 마주하는 순간 자연과 소통하며 물아일체 되는 경험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어떻게 성찰적 이야기가 떠오르시는지요?
윤: 사진만 찍는 것 이상으로 사전에 무수히 공부한다. 주제를 찍으러 나가기 전 어떻게 대처할지 미리 상상하고 몰입한다. 주제를 미리 정하고 영상 상상을 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뛰어다니며 주제를 집어넣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기장 죽성해변의 소나무 작업 때도 해가 뜨는 지점을 간파하고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Q: 작품을 보면 오롯이 해만 빛나게 하여 깊은 여운을 줍니다. 명암의 조화를 담아내기 위한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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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자연 상태를 100% 카메라에 담기 위해 기술적인 연구를 선행한다. 사진에는 찍히는 폭인 심도가 있다. 카메라를 많이 열어놓거나 셔터 속도를 조절해 농도를 맞춘다. 현장에서 기술적으로 빨리 판단해야 한다. 해는 순식간에 움직이기 때문에 초조함 속에서도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노하우다.
■ 만상과의 밀회와 인연의 서사
Q: 3장 ‘빛과 만상의 기운생동한 밀회’가 담고 있는 주된 내용과 철학은 무엇입니까?
윤: 빛은 피사체의 의사와 상관없이 슬며시 스며든다. 인간으로 치면 슬쩍 손을 내미는 것과 같다. 빛은 어디든 비치고 싶어 하고, 사물은 그 빛을 받아들여 밝아진다. 이 상호 교환과 공존의 영역을 밀회라고 표현했다.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항시 상대적이라는 자연의 섭리에 충실하고자 했다.
Q: 3장에서 독자나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대표적인 사진을 꼽아주신다면요?
윤: 여수 이순신대교 위에서 찍은 모내기 전 논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위험한 곳이었지만 전체 구도를 위해 높은 곳을 찾았다. 또 하나는 제천 의림지에서 강태공이 걸어오는 뒷모습이다. 인생은 똑바로 걸어왔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갈지자의 흔적이 있다. 그 모습이 곧 우리네 인생이라는 이미지를 담았다.
Q: 제목에서도 강조되었듯 사진 속에서 포착하고자 하신 만물의 ‘생생한 기운’이란 무엇입니까?
윤: 긍정의 에너지가 가득 찬 상태를 말한다. 자연의 기운은 우리가 함부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인 기도를 넘어 사진을 통해 자연의 좋은 기운을 받고, 그것을 자신의 몸의 기운으로 만드는 작업이 사진이다. 긍정이 해처럼 꽉 차 있는 상태,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생동한 기운이다.
Q: 자연을 담은 사진 중에 유독 음영의 대비가 뚜렷하거나 좌우대칭을 이루는 작품이 많은데 의도가 무엇입니까?
윤: 의도적인 미학적 배치다. 머릿속에 미리 영상을 그려두고 대칭과 투영을 통해 작품을 완성한다. 좌우 대칭은 인위적으로 만드는 구도이며, 이를 통해 한 장의 사진 속에 긴장감과 동적인 느낌을 동시에 부여하려 했다.
Q: 꽃과 산, 사람들의 ‘속삭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피사체가 건네는 무언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담아내셨습니까?
윤: 이번에는 사람을 풍경 속 오브제로 적극 활용했다. 인위적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사람을 배치하여 새로운 서사를 만든다. 해가 질 때 하루살이들이 춤추는 모습을 인생의 라스트 댄스로 비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존재의 자존감과 제천의 숨결
Q: 눈 덮인 보리와 진흙 속 연꽃을 통해 ‘추운 몸’이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어떤 시선이 담겨 있습니까?
윤: 겨울은 단순히 춥고 멈춘 계절이 아니다.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태동의 시간이다. 매화는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혹독한 겨울을 견딘다. 고난과 추위를 견디며 다음을 준비하는 생명의 숭고함을 추운 몸이라 불렀다. 겨울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지나야 비로소 생명의 꽃이 핀다.
Q: 스스로 피어나는 한 송이 나팔꽃을 통해 존재의 자존감을 노래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윤: 흔히 잡초라 무시하기 쉽지만, 나팔꽃은 그 계절 속에서 스스로를 가장 우뚝한 꽃이라 믿는다. 하얀 연화 같은 개념으로 사물에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하찮게 보는 사물도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명예와 아름다움이 있다. 모든 존재는 그 나름대로 최고라는 자존감을 담고 싶었다.
Q: 남한강 물안개 속 새들의 모습에 류시화 시인의 구절을 접목하셨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으셨습니까?
윤: 물안개는 빛과의 교감에 의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이다. 우리 인생도 빛나는 때를 만나 존재 가치가 극대화되기도 하고, 때를 만나지 못해 소멸하기도 한다. 시와 때를 잘 만났을 때 인생이 빛난다는 섭리를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기를 바랐다.
Q: 제천의 역사와 자연이 작가님의 예술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입니까?
윤: 제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크다. 월악산 영봉의 기운이나 청풍호의 비경은 자연의 기운이 극대화된 지점들이다. 제천은 카메라를 들고 조금만 나가면 훌륭한 피사체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제천의 자연은 내 사진 철학에 가장 좋은 영감을 주는 원천이다.
Q: 도담삼봉의 일몰 등 인연의 소중함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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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도담삼봉의 정자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장면을 현모양처와 가정의 주춧돌이라는 서사로 풀었다. 부부를 가장 귀한 보배로 정의하고, 차가운 렌즈 너머로 사람 사이의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하려 했다. 결국 사진의 완성은 기술이 아니라 그 안에 흐르는 인문학적 온기에 있다.
■ 향후 계획과 지역사회를 향한 바람
Q: 이러한 예술 활동이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하십니까?
윤: 우리 제천은 훌륭한 역사와 자연을 가졌음에도 그것을 너무 익숙하게 여기고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사진과 인문학을 통해 우리 지역 자산의 가치를 일깨워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제천이 더 풍성한 문화 지역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바란다.
Q: 앞으로 새롭게 탐구하고 싶은 주제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윤: 처음에는 8집에서 마무리하려 했으나, 제천의 역사적 흔적을 기록하는 작업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제천적인 것들을 분류하고 세분화하여 사진 예술의 영역으로 집어넣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사진을 통해 지역을 더 잘 이해하고 알릴 수 있도록 아마 10집까지는 이어가게 될 것 같다.
■ 윤종섭 제천문화원장 약력
윤 원장은 연세대학교 정경대학원을 졸업하고 1980년 공직에 입문해 32년간 제천시청에서 문화공보실장, 행정복지국장, 경제건설국장 등을 역임했다.
재직 중 통합제천시 설치준비단 참여, 제천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 입안, 혁신도시 제천 유치 등 지역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퇴임 후 제천한방바이오진흥재단 이사장과 제천문화원장을 지냈으며, 2022년 제33회 제천시민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현재 충청북도 재정투자 심사위원회 부위원장과 제천문화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며, 부인의 유언에 따라 1억 원의 장학금을 기탁하고 3년간 유족연금 전액을 지역 인재 육성에 내놓으며 묵묵히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제천또바기뉴스=이호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