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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문화원, 서상열·김선이 순국선열 묘소 새 단장

▲서상열 순국선열 묘소 단장 전과 후

▲김선이 순국선열 묘소 단장 전과 후

▲제천문화원 황금자 사무국장이 봉분제를 지내고 있다.

제천문화원(원장 최명현)은 24일 훼손된 서상열·김선이 순국선열 묘소를 새로 단장했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묘소를 멧돼지들의 훼손으로 봉분뿐만 아니라 묘소 주변을 파헤쳐 놓아 문화원은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제천문화원은 중장비를 동원해 홍수로 길이 폐인 봉분주변을 말끔히 정비하고, 파헤쳐진 봉분에 흙을 얹고 잔디를 입혔다.

묘소 새 단장 완료 후 사무국장은 경암후손(서홍석)은 병환으로 거동이 어렵고 김선이 의병은 후손이 없어 묘소를 다시 찾아 봉분제를 올렸다.

최명현 원장은 “현재 14기 이상의 묘소를 성역화하고, 매년 20여 기 묘소를 연 2회 벌초 등 관리를 통해서 호좌의병창의지로 그 자부심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경암 후손은 “경암 선생은 양평 출생으로 양평군에서 가묘를 크게 조성해 놓고 모시고자 하나 앞으로도 제천시와 제천문화원에서 이렇게만 관리를 해줘도 갈 이유가 없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편 서상렬(徐相烈, 1854-1896)은 호는 경암(敬菴), 자는 경은(景殷, 敬殷)으로 본관은 달성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나고 무과에 급제하기도 하였으나, 임오군란 후 묄렌도르프가 등용되는 것을 보고 김평묵의 문하에 나아가 공부하였고, 후에는 제천으로 이주하여 유중교를 쫓았다. 특히 장담으로 이사하여 장담 선비들 가운데 핵심 인물이었고, 유중교의 사후에는 한동안 장담 선비들의 강학을 이끌기도 하였다.

을미왜변과 단발령 이후에는 의병 봉기를 주도하였다. 제천에서 이필희 의병이 출범할 때 군사(軍師)로서 추대되어 장회전투를 지휘하였고, 유인석의 호좌의진에서는 영남 소토사(召討使)로서 활동하면서 의병을 반대하는 지방관들을 처단하고, 영남 7읍의 의병을 연합하여 태봉의 일본 병참을 공격하는 등, 호좌의진과 영남지역의 의진을 연대시키는 주도적 구실을 하였다. 관군의 공격으로 의진이 오랫동안 근거지로 장악하고 있던 제천을 빼앗기자, 서북쪽에서 재기할 것을 건의하고, 앞장서서 북상길을 개척하다가 낭천(화천)에서 전사하였으니 을미의병 ‘육의사’ 중의 한 사람이다. 무덤은 제천시 봉양읍 구곡리에 있으며, 1963년에 정부에서는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출처 제천의병도서관 다시 보는 의병 인물)

(제천또바기뉴스=이호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