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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검정고시에 이어 대학 도전까지 70세 어르신의 쉼없는 배움 열정

일과 가사 등으로 바쁜 상황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공부해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70세 어르신이 있어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주인공은 22년째 환자들과 직원들에게 정성스러게 밥을 지어 제공하고 있는 제천서울병원 정세빈(71, 여) 조리장이다.

정 어르신은 2018년도에 초·중졸 검정고시를 한 번에 합격한 데 이어 지난 5월 23일 충주 중앙중학교에서 실시된 제1회 검정고시에 고졸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4년 만에 이룬 성과라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올해 대학 도전으로 배움의 길을 계속 걷고 있다. 그런 어르신의 열정을 잠시 들여다본다.

◇배움과 멀었던 삶… “여자는 이름만 알면 되지?”

충주에서 4녀 중 셋째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공부에 대한 열정은 남달났던 어르신.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동생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중학교 1년을 겨우 마치고는 가난때문에 배움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 당시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 오죽했으면 울며 떼를 써보았지만, 부모님은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여자는 이름만 알면 되지?”라는 말로 어르신의 공부 열정을 꺾었다. 그렇게 배움은 중단됐다.

결혼하고도 마찬가지였다. 10남매 중 넷째인 남편과 결혼해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리고 아이들 키우며 공부와는 동떨어진 삶을 이어갔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큰 사고로 일을 접어 50살에 제천 서울병원 조리사로 입사해 가정과 직장이라는 두 가지 일을 병행했다. 공부한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어르신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초등과정부터 다시 시작

초등학교를 졸업 50여 년이 지난 2016년 노인종합복지관에 컴퓨터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검정고시반.

가난해서, 사느냐고 바빠서 나름의 이유로 공부를 하지 못한 정세빈 어르신에게 검정고시반은 매력 그 자체였다.

직원들에게 “나도 해도 되지”라고 선뜻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할 수 있겠어요”라는 걱정 섞인 말투였다.

그러나 정세빈 어르신은 굴하지 않고 “못 배운 게 한이 되어 용기를 내어 그때 놓은 펜을 다시 잡았다”고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 길로 초등학교는 졸업했지만, 기초를 다지기 위해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고 열정 하나로 공부를 시작했다.

일과 공부에 가사까지 삼중고 속에서도 근무가 일찍 끝나면 일주일에 두 번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았다.

집에 돌아오면 배운걸 요점 정리하고 모르면 이해할 수 있을때까지 책을 파고 들어갔다.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했다.

그렇게 2년을 열정 하나로 모든 것을 쏟아낸 결과 2018년 초졸 검정고시에 90점 가까운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정세빈 어르신은 “100점을 받은 과목도 있고 점수가 잘 나와서 자신감이 생겨서 같은 해 바로 중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해 합격했다”고 전했다.

공부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 다시 고졸 검정고시에 도전한다. 그 앞에는 수학과 영어 등 녹록지 않은 과목들이 놓여 있었다.

◇나만의 공부법으로 10분이라도 소중히

어르신이 자주 다니시는 집안 동선에는 어김없이 영어 단어장과 요점을 정리한 메모 종이가 싱크대와 거울에 심지어는 화장실 변기 옆에까지 붙어 있었다.

잠깐 쉬는 시간 10분에도 작은 메모장에 적힌 영어단어를 암기하고 싶은 어르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싱크대에서 요리와 설거지를 하면서, 거울을 보면서 시간을 쪼개가며 할 수 있는 시간을 모두 동원해 최선을 다해 준비해 왔다.

정 어르신은 “제일 힘든 수학은 인터넷 강의를 열강했고, 모르면 한 문제를 이해할 때까지 한 시간을 몰입했을 정도로 그냥 공부가 즐거웠다”고 너스레를 떠셨다.

이어 “과목별로 시간표와 나만의 요약 노트를 만들었다. 쓰고 외웠다. 그 흔적들은 박스에 고스란히 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부한 연습장이 한가득 쌓였다. 그렇게 따 쓴 종이를 버리고 버리고를 반복했다”고 나만의 공부법을 설명했다.

정 어르신은 “아들딸이 집에 오면 늦은 공부가 쑥스러워 집안 사방에 붙여 놓았던 메모 종이를 떼었다가 자식들이 가면 다시 붙이기도 했다”며 “자식들에게는 유난을 떨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그랬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간 가는지 모르고 공부에 몰입하다 보면 오후 11시, 12시가 된다. 새벽 4시면 출근해야 하는데 항상 시간에 쫓겼다”고 힘든 여정을 털어놓았다.

정세빈 어르신은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1년 6개월의 준비 끝에 고졸 합격이라는 값진 결과를 이루어낸다.

◇ 남편은 나의 최고의 우군… 설거지에 건강체크까지

합격 후 주변 반응은 뜨거웠다.

직장 동료들은 “언제 그렇게 공부했어요? 포기할지 알았는데 참 대단하다”며 “매번 발전 하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함께 기뻐했다.

자녀들은 “가문의 영광이다. 엄마가 너무 훌륭하고 멋져 늘 주변에 자랑한다”고 전했다.

노인종합복지관에서도 “일하며 언제 그렇게 공부했냐”고 감탄했다.

정세빈 어르신은 “내 일처럼 기뻐해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특히 우리 남편의 외조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어요. 설거지는 물론이고 간식을 챙기고 전용 운전기사에 건강 체크까지 늘 곁에서 절 응원했어요. 4년 동안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저의 곁에서 힘이 되어 주어 제가 이렇게 행복하게 산다”며 남편을 가리키며 엄지척을 세웠다.

◇대학 도전과 ‘공부 예찬’… “내마음을 젊게하고 인생을 즐겁게 만든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현재 대학진학 준비 중이다.

정 어르신은 “인생은 노력한 만큼 그 결과를 돌려준다”며 “올해 대원대 사회복지과에 들어가 배움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일과 공부를 함께한다는 것이 힘들었지만 배움은 항상 즐거웠다”며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쏟으면 값진 결과로 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청년들이나 함께 공부했던 분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면 꼭 좋은 결과가 있다”며 “필요하면 나의 공부에 대해서 언젠가 말해 주고 싶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정 어르신은 “‘공부’는 내 마음을 젊게 한다. 그래서 나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여기에 자부심을 느끼게까지 하여 인생을 즐겁게 한다”고 공부를 예찬했다.

지금도 구구단과 100에서 1까지 거꾸로 세면서 머리를 식히지 않으려고 매일 노력하며 인생 2막을 준비 중인 정 어르신의 가는 길에 행운이 따르길 진심으로 빌어 드린다.

(제천또바기뉴스=이호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