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고/컬럼

최복희의 ’나무 물고기‘ 어느 날의 일기

’나무 물고기‘ 어느 날의 일기 / 최복희
 
북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가끔씩 일행들끼리 주고받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듣다 보면  진한 감동의 여운을 종종 느끼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분들이 흘리고 간 삶의 편린들을 일기 삼아 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중 어느 날의 일기를 여기에 옮겨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참 이곳 나무 물고기를 오래하긴 했나보다.

오늘도 한 무리 보통의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엔 그들이 흘리고 간 이야기가 해 긴 봄날의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어지러이 널려진 빈 글라스와 찻잔을 모으다 말고 가만히 그들의 흔적을 들여다본다.

반 아이들을 걱정하던 초등학교 여선생님이 앉았던 자리엔 붉은 루주 자욱이 선명한 글라스가 선생님의 입김처럼 따스하게 스며있고, 새로 부임할 학교에 대한 기대와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따기 위해 오지 학교를 자청한 또 다른 남선생님이 남기고 간 조그만 재떨이엔 어쩔 수 없는 생활인으로서의 이야기가 하얀 재에 스며 있다.

그뿐인가. 지난번 반 아이들의 졸업식을 마치고 조부모 가정 아이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붉어진 눈 주위를 애써 감추었던 강 선생님의 자리엔 아직 가시지 않은 밝은 미소 한 움큼이 활짝 피어있는 벽화의 코스모스 온기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를 갓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던가. 똥도 안 누고 사는 줄로만 알았던 하늘 같던 선생님이 화장실에서 바지춤을 끌어올리며 나오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랍던지, 눈이 동그래서 가만히 쳐다보다 뒤도 안 돌아보고 교실로 달려와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변소에서 나오 더라며 호들갑을 떨어대던 일을 생각하며 피식 웃음 한 스푼 흘려본다.

“아니 뭐라구요?
저 좀 전에 뒷좌석에 계시던 분들이 우리 반 아이 아빠였단 말이지요?”
“이런 …이런 …  이를 어쩌면 좋아”

슬그머니 음식값 계산을 하고 떠나간 사람이 자기가 담임으로 있는 반 아이 아빠인 학부모인 줄 모르던 선생님, 교사가 사석에서 반 아이 학부모님께 신세를 지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진즉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선생님의 청렴함도, 아이 이름도 알리지 않은 채 아이를 맡아주신 선생님께 작은 성의일 뿐이라는 학부모님의 사심 없는 마음도 그저 사제의 정이 살아있는 듯 따듯하기 만하다.

모나지 않은 생활 속에 서리서리 풀어놓은 윤기 흐르는 삶의 편린들이 작은 공간에 부유물처럼 떠다닌다. 문득. 동그란 얼굴에 환한 미소가 유난히 내 가슴을 콩닥이게 했던 초등학교 때의 선생님이 그립다.

늘 깊은 마음으로 연민 품어 바라보던 긴치마에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를 즐겨 입으시던 담임선생님께 나는 늘 무언가를  드리지 못해 안달해했다. 아마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선생님께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봄이면 초당 골 언덕배기 밭가에 오그르 달린 까망 오디를 알루미늄 도시락에 가득 따 담아서 수줍게 내밀기도 했고, 어느 날은 엄마가 만든 송편을 찬합에 가득 담아 내밀면 “고마워 잘 먹을께”하며 내 손을 다정하게 잡아 주시던 선생님. 지금은 손자 손녀 거느린 반백의 할머니 되셨을 그분은 어디에 계실까.

추억 속에 오롯이 살아있는 그분이 이 밤에 보고 싶은 마음 더 간절해지는 걸 보면 나도 나이가 먹긴 먹나 보다.

구수한 냄새 풍기며 알맞게 구워진 연탄난로 위의 군 고구마를 서로에게 권해주며 떠나간 뒷자리를 머슴은 빙그레 미소로 답하며 바라보고 있다.

“여기는 우리가 쥔이지요?”
한 손에 고구마를 들고 이곳 목어만이 주는 편안함이라며 한 수 더 뜨는 객들에게 “그럼요”하고 맞장구 쳐주었을 때 되돌아오는 눈길이 봄날처럼 따습다.

모두의 살아가는 모습이 넉넉해 보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