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현장

창의125주년 제천의병제 제34회 순국의병묘제 봉행

“어느덧 한 해가 또 바뀌었사온데 오직 존량들께서는 섬 오랑캐가 우리나라를 쳐들어와 나라의 모든 권한을 약탈할 때, 평범한 백성으로 일어나 정당함을 호위하고 간사함을 물리치려 큰 의로움으로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전투에 나가 왜구를 무찔렀으나, 천지 신께서 돌보지 못하시어 중과부적으로 모진 창검 앞에 돌아가시니 그 분통함을 어찌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우리 제천 후예들은 사모함을 이기지 못해 금년에도 창의 의병제 125주년을 맞이하여 삼가 맑은 술과 여러가지 음식을 마련하여 잔을 올리오니 흡량 하소옵소.”

지역 의병의 넋을 기리는 창의125주년 제천의병제 제34회 순국의병묘제가 10월 17일 11시 제천시 고암동 순국선열묘역에서 이상천 시장, 배동만 시의장 및 이정임·이영순 의원, 윤종섭 제천문화원장 등 기관장, 제천동우회원 등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이날 봉행된 위령묘제에는 코로나19로 매년 초청된 학생들을 배제하고 최소 인원만 참석하여 예를 올렸다.

홍근원 회원의 집례로 좌집사와 우집사가 촛불을 점화하고 재물을 점검하며 위령묘제가 진행됐다.

이정규 의사는 신항선 제천향교 전교, 김상태 의병장은 이상천 제천시장, 칠의사는 정상태 제천동우회장, 최욱영 열사는 윤종섭 제천 문화원장, 홍사구 열사는 배동만 제천시 의장이 초헌관을 맡아 각각 봉행했다. 이외에도 제천동우회 정소양 회원이 대축을 김꽃임 회원이 진설을 맡아 원활한 진행을 도왔다.

다음으로 윤병순 회원의 축문 해설 낭독과 이상천 시장의 추도사, 이성범 부회장의 경과보고가 이어졌다.

제천시는 1984년 순국선열묘역을 성역화했으며, 이 위령제를 제천동우회 주관으로 매년 거행하고 있다.

정상태 행정동우회장은 “코로나로 학생들을 초청을 하지 못해 섭섭하지만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구한말 왜군들에게 장렬하게 순사하신 선열들의 뜻을 기리고 지속해서 발전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추도사에서 이상천 제천 시장은 “의병 창의 125주년을 맞아 순국 의병의 거룩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온 힘을 바친 선열들에게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고 조사했다.

이어 “구한말 일제의 국권침탈 야욕에 맞서 6백여 의병이 봉양 장담마을에서 항일 구국의 거사를 결의하여 제천이 전국 의벼의 모태지가 되었다”며 “제천 의병의 후예로서 나라의 정체성을 잘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매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끝으로 “아직까지 지역 내 감염없이 코로나를 잘 이겨내고 있다”며 “이는 바로 순국선열의 희생정신과 오늘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시민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추도사를 마쳤다.

 

한편 고암동 순국선열묘역에는 <7의사총>과 <이정규 의사>, <김상태 의병장>, <홍사구 열사>, <최욱영 의사>의 묘소가 있다.

<7의사>는 김용주,김재관, 추성손, 우재봉, 우규하, 박원용, 오문용 7분으로 충주성 전투에서 전공을 세우고 1896년 4월초 충주 장현에서 전사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규 의사>는 유인석에게 배웠으며, 을미의병 때에 의병측의 입장을 중앙에 알리기 위해 상경하여 종앙의 요로에 교섭하기도 하였다. 1905년 제천향약 주도하었고, 정미의병 때 이강년의 참모 종사로도 활약하였다. 국내에 남아 해외 동지들과의 연락을 담당하는 한편, 군자금을 모으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만년에는 장담에서의 강회를 주재하고, 향리에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상태 의병장>은 이강년 선생과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증군장으로 영월 등에서 활약하였으며 대구 감옥에서 단식끝에 1912년 7월 28일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최욱영 의사>는 1907년 이강년의진의 군사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제천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체포되어 징년 15년을 선고 받고 마포형무소에서 복역중 1919년 8월 1일(음력) 순국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홍사구 의사>는 1895년 스승인 안승우가 의병을 일으키자 그의 종사로 활약하였으며, 1896년 스승과 함께 순국하니 그해 나이 19세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제천또바기뉴스=이호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