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고/컬럼

용두산의 가을바람! 백만 송이 꽃으로 피어나다 / 최복희

친구의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아침도 거른 채 용두산 입구에 도착했다. 이미 와서 기다리던 친구와 함께 가파르긴 하지만 좀 더 빨라 오를 수 있는 등산로를 택해 오르다 보니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이  여름내 게으름피운 증거인 양 힘에 버겁다. 그동안 다녀간 수많은 사람의 발길로 인해 이미 신작로가 되어버린 등산길이지만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앞서가는 친구의 발길을 잡아놓고 깊은숨을 들이킨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물병 하나 들고 가볍게 오르는 또 다른 등산객들의 뒷모습이 경쾌하다. 나도 두세 번 오르다 보면 저리되겠지 싶어 발길을 재촉해본다. 사실 그동안 산행한다고 다니긴 하지만 번번이 야생화며 산약초와 눈 맞춤 하다 보면 가다 쉬기를 반복하여 이렇게 등산코스를 밟아 보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내가 오르는 산길은 등산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발아래 낙엽의 감촉이 폭신하니 좋다.

어느새 가을인가?

우거진 소나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에 노랑색 마타리며 구절초, 쑥부쟁이등 가을꽃들도 어느새 꽃망울이 부풀어 있다. 그러고 보니 간간이 스치는 바람이 달게만 느껴진다. 바람에도 맛이 있다는 걸 비로소 느낀다. 여름의 따가운 햇살에 튼실하게 살을 찌운 과실들처럼 상수리나무며 각종의 열매들도 하나같이 익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오늘은 온몸으로 먼저 계절을  알아차리는 야생화들과 하나하나 눈맞춤을 하는 시간 산행은 이렇게 자연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 좋다.
 

무심코 밝고 지나는데 나무뿌리 하나가
내게 또 말을 걸어온다. 겉으로 송두리째 드러낸 노송의 나무뿌리! 실타래처럼 자신을 얽히고 얽어 모진 비바람에도 여바란듯이 버티고 서 있는데 인간의 발길에 닮아서 반들반들해진 모습이 인고의 세월을 당당하게 이겨냈다고 말해주고 있다.

조금 더 오르다 보니 또 다른 소나무가 발길을 잡는다. 어느 날 휘몰아친 폭풍우에 아프게 가지 찢기고 속까지 다 내어준 아픔을 딛고도 처연하게 서 있는 소나무! 강인한 생명력에 잠시 숙연함을 느껴본다.

나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다. 먼저 올라온 사람들, 에메랄드빛 가을하늘 아래 바람의 달콤함에 마음껏 취해있다. 코로나19로 지치고 힘들었을 일상들이 지금 만큼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참 좋다!
 
저 멀리 실루엣으로 이어지는 능선들 사이로 제천 시내의 모습이 얌전하다. 의림지 호수도 하얀 오리배 몇 마리 띄워놓고 강강술래를 하듯 원형을 그리며 지나는 자동차들마저도 그대로 그림인 듯 여유롭다. 물 한 모금이 덩달아 달콤하니 하산의 발길이 가볍기만한데  내친김에 그냥 지날 수 없는 곳 그곳으로 발길을 향배본다.

우와!
너희들이었구나!

정상에 서 있는 내게 숨바꼭질을 하듯  간간이 보여주던 비행장의 수만송이 꽃들에 그저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인사를 대신해 본다. 한 녀석도 흐트러짐 없이 태양을 향해 일제히 도열하고 서 있는  해바라기들과  비단에 수를 놓은 듯 형형색색으로 다가오는 백일홍 꽃송이들, 혼자 보기 아까워 어찌한담, 누구라도 불러와서 함께 감상하고픈 충동에 가슴이 뛴다. 이럴 땐 코로나가 야속하기만 하다. 이 자체로 축제장인데 누구를 와라 가라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지금껏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백일홍의 탐스러움에 모두가 감탄에 감탄하며 찾아드는 그 날은 언제쯤일까? 그 어느때 보다도 화려하고 멋진 백만송이 꽃들의 향연에 혼자 보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오늘은 하루가 마냥 행복한 날이다.
백일동안 피어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백일홍!

제천 시민 모든 분들 알뜰살뜰 챙겨 보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