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문화원(원장 윤종섭)은 4월 17일(토) 오전 11시 충혼탑과 의병기념탑을 참배하고 독립만세운동의 주역 애국지사 이범우 묘소를 둘러보며 제천 3.1 만세운동 102주년를 기렸다.
문화원 임원진들은 3.1독립만세운동기념 문화나눔 행사가 코로나19로 취소되자 제천의 3.1 만세운동이 있었던 4월 17일 그날의 함성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기념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세명대 지역문화연구소(소장 오지혜)에서도 그 뜻을 함께했다.
충북대학교 김종수 교수는 “도이(島夷)의 야만성과 제천 지역의 3.1 운동”이라는 논문에서 제천 3.1 운동은 충북에서 마지막으로 펼쳐지었나, 사망 40명, 피상 92명, 피수 48명을 기록하는 등 사상자와 체포 인사, 시위 군중 수, 열기에서 가장 치열했다. 또한 이범우, 이기하 등 주도 계층에 의해 사전 기획됐고, 4.17 거사 후 송학면 4.18 만세운동으로 이어지는 폭발성과 확장성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세명대학교 구완회 교수는 “제천의 3.1 운동에 관한 새로운 검토”라는 논문에서 “그 당시 무단 통치기에 지역 사회가 군사적 강점 형태로 의병 노선 외 애국계몽운동 계열의 세력이 성장하고 있었다. 위치별로 만세 운동을 준비하던 장소가 용바위였으며, 만세 운동의 전개지는 재래시장 골목이었고, 동명초가 만세 운동을 이끈 요람이란 사실을 기억할 것”을 강조했다.
이처럼 제천은 4월 17일 제천 장날 1천여 명의 군중이 미리 제작 배포한 태극기를 휘두르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등 다른 어느 지역보다 격렬하게 일제의 국권 침탈에 저항한 호국정신의 성지이다.
아울러 충북지역은 3.1운동 당시 이를 이끌었던 민족대표 33인 중 6명의 인사가 포함되어 있었고 비록 다른 지역보다 발발 시점이 다소 늦었으나 4월 중순까지 지속해서 당시 충북의 10개군 전역에서 격렬히 진행된 특징을 보이나 이를 선양하고 기념하는 유일한 곳이다.
윤종섭 제천문화원장은 “일본은 조선 민족 전체를 총과 칼끝으로 주무르려 하였고, 이에 맞서는 의병항쟁 과정에서 제천은 참혹한 피해를 보았다. 특히 제천을 찾았던 매켄지의 설명에 따르면 ‘제천은 지도에서 사라졌다’라고 할 만큼 중심부가 초토화되었다”고 102년 전 제천을 되짚었다.
그러면서 “당시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장소가 제천의 명소인 용바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재래시장, 만세운동을 이끌어간 중요한 요람 동명초등학교에 이를 기록한 안내판 하나 없는 것이 참 아쉽다”며 “앞으로 우리가 단순한 행사에서 그칠 게 아니라 만세운동의 역사를 자랑하면서 그날의 간절했던 소망을 잊지 말고 그들의 희생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자”고 피력했다.
(제천또바기뉴스=이호영기자)